생각하기 귀찮아하는 나윤

요즈음 초등입학 전 어린 아이들도 ‘귀찮다’라는 표현을 해서 깜짝 놀라곤 한다. 기성 세대들은 뭐든지 재미있고 뭐든지 하고 싶어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을 법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고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해야할 일들에 쫓기는 각박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 역시 세상 변화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인지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릴 때부터 학교나 학원 숙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을 보면 ‘생각하는 과정’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을까 우려가 된다. 일부 취약한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없을 정도로 무기력감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나윤이는 인지학습 치료자가 ‘생각해보자’고 하면 표정이 굳어지고 어찌해야할지 난감해한다. 흥미를 보이는 미로문제라든가, 간단한 연산문제는 풀어내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도록 하거나, 풀이과정을 써야 하는 문장제 문제에서는 실수와 포기가 잦다.

나윤이는 다섯 살부터 일일학습지를 시작하였고 3학년인 현재까지 학습지나 학원 공부를 연속적으로 해왔다. 매번 미루다가 시간에 쫓겨서 과제를 하다보니 급하게, 대충, 때로는 아무렇게나 써버리는 습관이 들었다. 좀 크면 나아지겠지 하고 막연한 기대를 해 오던 엄마가 이제는 조언을 구하고자 상담실을 찾게 된 것이다. 나윤이의 인지 프로그램 초반 목표는 ‘천천히 하기’이다. 분량을 미리 정하기 보다는 한가지 문제에 몰두할 수 있도록 아동의 집중력, 충동성 조절 등 인지특성에 맞는 중재를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천천히 하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단계별 생각하기 문제들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스스로 확인해가는 인지과정을 재구조화시키게 될 것이다.

나윤이는 이러한 진행방법을 매우 힘들어하고 짜증내고 있다. 숙제를 내 주는 것도 아니고 빨리하라고 재촉하지도 않으며 못한다고 야단치지도 않고 기다려주는데 아동은 답답해하고 답이 뭔지, 자신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치료자의 반응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나윤이 부모에게도 아동이 푼 문제를 채점해 주기 보다는 아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기회를 줄 것을 당부하였다. 사고과정은 경험을 통해 쌓여지는 것이며, 부모의 역할이 큰 몫을 할 수 있다.

* 내일신문 제 145호(10.07.27 ~ 08.02)에 게재된 내용입니다.